새타령·아리랑 장단에 재즈 멜로디…'국악 재즈' 뉴요커 홀리다

입력 2022-11-24 17:53   수정 2022-11-25 02:15

“자신만의 색채로 열광적인 기교와 사색을 담아냈다.”(뉴욕타임스), “독창적이고 대담한 이야기꾼.”(그래미)

각종 외신이 재즈음악가 지혜 리(이지혜)를 소개한 문장들이다. 지난해 그가 발매한 2집 음반 ‘데어링 마인드(Daring mind·대담한 마음)’에 대한 찬사였다. 뉴욕타임스는 지난해 이 앨범을 ‘당장 들어야 할 클래식 음반’ 5선에 뽑았고, 그래미는 ‘재즈의 형식을 바꾸는 빅밴드 작곡가 6인’ 중 한 명으로 지혜 리를 꼽았다.

그가 재즈를 배운 지 9년, 재즈음악가로 공식 데뷔한 지 5년 만에 이뤄낸 성과다. 재즈의 본고장 미국 뉴욕에서 국악을 접목한 독특한 재즈 스타일로 큰 호응을 얻고 있는 지혜 리를 만나 그의 음악 인생을 들어봤다. 지혜 리는 2016년 뉴욕 재즈공연장 셰이퍼셰프티랩에서 데뷔 공연을 앞두고 떠올랐던 생각부터 이야기했다. “수많은 인종과 음악이 섞여 있는 뉴욕 재즈계에서 살아남으려면 독보적인 무언가가 필요했습니다. 그때 어머니가 듣던 노래가 생각났어요. 판소리 명창 만정 김소희(1917~1995)의 ‘새타령’ 가락이었습니다.”

그의 말마따나 뉴욕 재즈계는 한국인에게 불모지였다. 쟁쟁한 현지 예술가가 즐비하고, 관객은 굳이 한국인 연주자를 찾지 않았다. 지혜 리의 묘책은 모국의 노래였다. 자메이카 전통음악인 스카에 미국식 리듬&블루스(R&B)와 록을 섞어 레게를 퍼뜨린 밥 말리나, 남미 전통음악 탱고를 클래식과 엮어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아스토르 피아졸라가 되는 길을 택한 것이다.

“제가 걸어온 음악 여정에서 예술의 형태가 어떻게 발전했는지 고민했어요. 그래서 국악에 관심을 두게 됐습니다. 금기를 깬다는 걱정도 들었지만, 재즈 음악가로서 국악을 변형시키는 게 음악적 실험처럼 느껴졌어요.”

한국식 짜장면에 이탈리아 스파게티를 합쳐 ‘짜파게티’라는 이름이 탄생했듯 지혜 리의 손끝에서 ‘국악 재즈’가 탄생했다. 뉴욕 재즈공연장에서 그의 17인조 빅밴드는 새타령을 비롯한 국악을 재즈로 편곡해 연주하기 시작했다.

지혜 리는 2012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보스턴 버클리음대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재즈를 배운 적이 없다. 한국에선 실용음악을 전공했고 싱어송라이터로 데뷔했다. 지혜 지(智)와 노래 요(謠)를 합쳐 지요라는 예명을 내세웠다. 2010년 첫 미니 앨범, 2011년 첫 정규 앨범을 발표했다. “한국에서 인디 가수로 활동하며 한계를 느꼈어요. 정해진 양식에 따라 노래를 부르는 게 권태롭기도 했고요. 새로운 곡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차올랐습니다.”


그는 버클리음대에서 보이스퍼포먼스와 재즈 작곡을 전공했다. “양식이 정해진 팝과 달리 재즈는 리듬과 화성이 복잡한, 새로운 작곡법을 위한 최고의 장르”라고 생각해서다. 그의 음악적 재능은 재즈에서 꽃피웠다. 버클리음대 재즈 작곡 부문 최고상인 듀크엘링턴상을 2회 연속 수상했고, 재즈앳링컨센터오케스트라, 카네기홀내셔널유스오케스트라 재즈, BMI 등으로부터 작곡·편곡을 위촉받았다. 맨해튼음대 석사 재학 중 첫 앨범 ‘에이프릴’(2017)을 발매했고, 이듬해에는 찰리파커 작곡상을 받기도 했다.

그는 재즈를 공부하면서 2집 음반 제목처럼 ‘대담한 마음’을 먹었다. 빌보드지의 표현처럼 ‘여전히 남성들이 지배하는 세상’인 재즈오케스트라(빅밴드)의 수장이 되기로 한 것이다. 그는 버클리음대 출신 연주자들로 빅밴드를 꾸렸다. “여성이라는 생각을 갖고 접근하는 것 자체가 패배라고 생각했어요. 소수자라는 정체성을 밑바탕에 깔면 목표 의식이 흐려져요. 저는 늘 여성이기 전에 작곡가인 걸 되뇌며 버텼습니다.”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뉴욕에서 빅밴드를 이끄는 비용부터 만만치 않았다. “사실 뉴욕에 사는 것 자체가 쉽지 않죠. 물가는 높고 삶의 질은 낮습니다. 하지만 사양길로 접어들었다는 재즈를 계속하는 ‘광인(狂人)’들이 한데 모여 있으니 아름다운 에너지가 샘솟는 것 같아요.”


역경을 딛고 낸 앨범과 연주가 뉴욕에서 인정받으면서 그의 이름이 한국에도 알려지기 시작했다. 지난해 10월 네이버 온스테이지에 ‘재즈 오케스트라의 미래, 지혜리오케스트라’라는 이름으로 소개됐고, 재즈 오케스트라로 편곡한 새타령이 큰 호응을 얻었다. 지난 7월에는 국립극장의 여우락페스티벌에서 새타령을 비롯해 방아타령과 아리랑 등을 재즈 오케스트라로 편곡해 연주했다.

지혜리오케스트라는 다음달 3일 맨해튼 더타임스센터에서 열리는 빅밴드 공연에서도 한국 민요를 재즈 스타일로 새롭게 편곡한 작품을 선보이고 이어 9일에는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같은 레퍼토리로 유럽 데뷔 무대를 가진다.

지혜 리는 3집 음반에는 본격적으로 국악을 내세울 계획이라고 밝혔다. “과거의 재즈 스탠더드(대표곡)를 녹음하고 싶지는 않아요. 제 음악이 아닌 것처럼 느껴집니다. 어떻게 평가받든 지금으로서는 국악 장단에 재즈 멜로디를 실은 창작곡을 하고 싶어요. 재즈와 국악의 접점을 찾아가다 보면 저만의 음악이 다져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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